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예수님에 대하여) 5. 예수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4)

(예수님에 대하여) 5. 예수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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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4)

 

지난 호에서 예수님의 별명인 어린양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유대교 전통에 따라 이름붙이는 작업이 진행된 결과였다. 마치 어린양처럼 죄를 없애 구원의 길로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대변한다. 지중해 권을 재패한 로마 제국에 복음이 전해질 때도 같은 과정이 있었다. 사도들의 시급했던 과제는 이방인에게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일이었다. 도대체 랍비, 메시아, 어린양 식의 유대 개념이 먹혀들 리 없었을 테니 말이다. 특히, 이는 바울로 같은 유랑전도사들에게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바울로는 그대가 예수님을 입으로 주님이라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고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로마 10:9)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백해야 할 주님이라는 호칭은 어디서 온 것일까?

잘 알다시피 많고도 많은 게 로마제국의 신이었다. 아직도 로마 시내 한복판에 세워져있는 판테온(萬神殿)이 그 대표적인 증거다. 로마제국은 동서로는 브리타니아과 오리엔트, 남북으로는 라인 강과 북아프리카까지 차지한, 명실공이 세계제국의 위상을 갖고 있었다. 제국의 종교에는 큰 원칙이 하나 있었다. 황제숭배를 통해 거대한 세계를 지배하는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주전 48년 케사르가 종신통령終身總統(딕타토어)으로 권력의 정점에 오르자 에페소의 시민들은 그를 두고 인간의 생명을 위해 오신 구세주(소테르)” 치켜세웠으며, 그가 죽은 후에 원로원에서는 케사르에게 공식적으로 신성을 부여했다(디부스 율리우스). 케사르의 조카인 옥타비아누스는 황제숭배의 기틀을 잡은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현실 정치에서는 충성서약을 막는 등 냉정함을 유지했지만, 국가적인 행사에 있어서는 신에 버금가는 존칭인 지존자’(아우구스투스)로 부르도록 했다. 제국의 백성들에게 신이 자신들을 다스린다는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아우구스투스의 업적은 언제나 신화적 언어로 미화되었으며, 인간을 위해 보내진 전능자(판토크라토어)이자 구세주로 불리어졌다. 아우구스투스가 죽자 그가 신들의 세계로 들리어졌다는 믿음과 더불어 그의 신전이 생겨났다.

후대의 황제들도 아우구스투스를 이어받아 신의 아들(디비 필루스)로 추앙 받았으며, 특히 갈리쿨라와 네로는 각각 태양신 헬리오스, 음악의 신인 아폴로로 자처했다. 1세기 말경에 로마를 통치한 도마티아누스는 모든 공문서의 서두를 우리의 주님(퀴리오스)이시며 신(데우스)은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는 문구를 쓰도록 했다. 도미티아누스는 제국 어디에나 황제의 상과 웅장한 신전을 세우도록 했으며, 이런 사실은 요한계시록의 배경이 되었다.

로마 제국이 세력권을 점점 넓혀가면서 황제숭배도 제 몫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황제에게는 언제나 주님’, ‘구원자’, ‘전능자라는 호칭이 부여되었고 황제와 관련된 소식을 복음福音(유안겔리온)이라 하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목적을 내포하는 상징들이었을 뿐, 실제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었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예외는 있는 법. 만약 황제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종교가 등장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때는 가차 없이 그 종교를 짓밟아 따끔한 맛을 보여주는 정책을 견지했다.

바울로 같은 유랑전도사들은 로마세계로 진출하면서 예수님이 갖는 의미와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설명체계가 벌써부터 로마세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아니, 이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주님, 구원자(구세주), 전능자라는 호칭을 예수님에게 부여했고, 예수님을 선포할 때도 복음이라는 용어를 쓰게 된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교의 태동기에는 그런 식의 의미 부여가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지만 세력이 커지자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자들이 감히 황제에게만 붙여지는 명칭을 함부로 사용하는가? 로마에 두 명의 황제가 있다는 말인가? 특히, 제국의 수도 로마에서는 이런 일이 절대 허용될 리 없었고, 기나긴 박해의 시간으로 가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다. 최초의 대대적인 박해는 네로 황제 때 있었다(64-68).

미사 중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퀴리에 엘레이손)라는 기원을 한다. 여기의 주님퀴리오스이며, ‘구세주 흘리신 고귀한 피구세주소테르이며, 유럽의 대성당들의 제대 뒤쪽 쿠펠(1/4 구형) 천장에 그려진 예수님의 상이 판토크라토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 호칭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스스로 노력을 안해서이기도 하지만 교회에서 굳이 가르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용감하게 주님을 외쳤던 신앙의 선배들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