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예수님에 대하여) 1. 예수 사건의 시작

(예수님에 대하여) 1. 예수 사건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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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 사건의 시작

 

달 전에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다. 많은 가톨릭 교우들이 그분의 방문을 환영했고 사회 전반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올해 각 언론사의 10대 뉴스를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다들 알다시피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대리자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주님의 복음을 전달하고 상처를 보듬어주고 교회에 힘과 용기를 준다. 글자그대로 사목방문인 셈이다. 예수와 교황을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이유다.

예수는 2천 년 전 이스라엘에서 처음 그 존재를 알렸다. 비록 예수의 신비한 탄생이야기와 예루살렘 성전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던 사건이 복음서에 실려 있지만, 역시 예수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의 답은 3년 동안 이루어졌던 하느님 나라선포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탄생이야기나 믿음의 표상인 성모 마리아의 가치를 폄훼하거나 2천년 교회의 든든한 반석이 된 부활사건을 평가절하 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다. 예수의 공생활에 집중해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쓰면 종종 받는 질문이라서 하는 말이다. 신부님은 왜 마리아 신심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시나요?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기 라도 하단 말입니까? 예수의 부활을 혹시 부정하시나요? 그런 질문에 이제는 지쳤다.

예수의 참 가치는 하느님 나라 선포에서 밝히 드러난다. 살아생전 예수는 주변에 모인 군중에게 하느님 나라, 보다 정확히 말해 하느님에 대해 가르쳤고 결국 그 가르침 덕분에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예수가 죽기까지 꼭 붙들고 있었던 하느님! 거기에 바로 복음의 핵심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밝히 자신을 드러낸 하느님은 어떤 분일까?

처음 예수가 하느님 나라를 설파할 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우주의 창조자이며 시공을 초월한 존재라는 하느님의 정의는 한없이 추상적이라 요즘도 무슨 소린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물며 깜깜했던 시절인 2천 년 전,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갈릴리 지역의 일자무식 청중에게 하느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그런 까닭에 예수는 하느님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말 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할까, 혹은 무슨 비유로 그것을 표현할까?”(마르 4:30) 아마 청중들을 마주해 잠시 하늘을 보며 숨을 돌리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제자들은 예수가 한 일을 보는 눈이 닫혀 있었다. 예수가 갈릴리 바다의 험한 풍랑을 가라 앉히자 겁을 먹어 두려워했고(마르 4:41), 물위를 걸어오는 예수를 보고 유령으로 착각해 비명을 질렀으며(마르 6:49), 예수의 변모를 목격하자 말문이 막히고 겁에 질렸다(마르 9:6). 제자들은 예수가 하신 말씀을 듣는 귀가 막혀 있었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 종종 따로 교육을 받았고(마르 4:10-20, 7:17-23), ‘누룩을 조심하라는 예수의 말씀에 엉뚱하게 빵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불찰을 스스로 나무랐으며(마르 8:16), 예수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자 그 분을 책망하기까지 했다(마르 8:32). 예수의 가르침이 당대에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정작 복음의 불꽃은 예수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후에 힘차게 타올랐다. 예수의 죽음 앞에서 걸음아 날 살려라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던 제자들은, 다시금 스승의 말씀과 행적을 상기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스승을 기억하고 가르침을 되새기고 성찰을 되풀이하면서 다음과 같은 다짐을 했을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자!”

바울로가 쓴 갈라디아서(2:11-14)와 고린토 전서(9:1-5)에 보면 베드로가 갈라디아 교회와 고린토 교회를 방문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사실 기록이라기보다는 바울로가 울분에 차 베드로를 비난하는 맥락에서 터져 나온 말이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왜 베드로가 유럽 대륙에 있던 교회까지 찾아갔으며, 그곳에 당도해서는 어떤 일을 했는지 당연히 물어야 한다.

베드로가 당도했다는 소식을 들은 교인들은 미사 시간에 맞춰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특히 그가 예수의 수제자였음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아마 평소에 출석을 등한시 했던 냉담자들도 대거 등장했을 것이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의 가르침을 전달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직 (공의회를 거쳐 확정된) 교리 같은 것은 없었기에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역사의 예수에 대해 말 할뿐이었다.

여러분, 어느 날 저녁 멀리서부터 어스름 노을이 밀려오자 예수를 문득 하늘 저편을 바라보시다가 입을 여셨습니다. 어느 장사꾼이 나귀에 짐을 가득 싣고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고 있었답니다. 그날따라 날이 오늘처럼 무척 더웠습니다. 장사꾼은 땀을 훔치려 잠시 나무 그늘에 들어갔지요. 그런데 갑자기 졸음이 밀려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눈이 슬슬 감기기 시작하는 때 강도들이 나타났어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예리코로 내려가는 길이 얼마나 한적하고 위험합니까? 강도들이 숨어있기에 제격이지요…. 잠시 물 한잔 먹고 하겠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입이 쉬 마릅니다.” 짐작을 풀어보니 어딘지 교황의 행보와 비슷하지 않은가? 예수의 가르침을 선포하고 지역교회에 힘을 주는 모습이 말이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와 제자들의 선교! 예수 사건의 시작은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