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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성모수태고지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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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수태고지 축일

(이사7:10-14 / 시편40:5-10 / 히브10:4-10 / 루가1:26-38)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서품식과 수도자 서원 예식 중에 서품 받을 성직자 혹은 서원할 수도자를 호명하면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응답합니다. 라틴어로는 “Ad sum”으로, 영어에서는 “Here I am”이라고 합니다. 교단마다 차이가 있지만, “Ad sum!”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이들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이라는 기나긴 양성과정을 거칩니다. 그러기에 성직과 수도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이 말의 의미를 5년 내지 10년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실로 진지하고 장엄한 순간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이러한 응답을 가장 완벽하게 하신 분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히브10:9)라고 당신의 소명의식을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소명의식을 깨닫고 고백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성직을 준비하는 신학생들은 “예, 여기 있습니다”라는 한마디 응답을 위해 준비하고 또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은 때론 우리의 준비와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불현듯이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리아가 바로 그렇습니다. 갈릴래아 나자렛 동네에 살고있는 시골 처녀 마리아에게 어느 날 천사가 갑자기 나타나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아기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고 경천동지할 이 말 앞에 우리는 “Ad sum”이라는 응답이 과연 즉각 나올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마태1:34)라고 되물은 마리아의 질문은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일 것입니다. 그러자, 천사는 “성령이 너에게 내려 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마태1:35)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목에서 마리아는 결단에 직면합니다. 사실 마리아의 질문에 천사는 이와 같이 대답할 수 밖에 없겠지만, 인간의 경험세계를 넘어서는 말이라서 역설적으로 불확실한 답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확실한 증거와 증명만으로 통용되는 오늘날 관점에서 본다면 천사의 이 보증은 더더욱 신뢰할 수 없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찰나의 순간을 거쳐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마태1:38)라고 응답합니다. 아니, 단순히 “예”라고 하는 차원을 넘어서 ‘저에게도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하느님의 비전을 자신의 비전으로 품습니다. 천사의 메시지도 놀랍지만, 마리아의 이런 태도도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일들을 겪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리아와 같은 태도로 신뢰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용기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함께 꿈을 꾸고, 비전에 동참한다는 것은 더더욱 큰 결단이 요구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 이해득실을 따져서 참여할지 말지를 망설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우리나라는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작년 까지만 해도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극적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영원한 원수 같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평화를 논의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1953년 이후, 준전시상태인 휴전협정을 종식하기 위한 종전협정과 핵이 없는 한반도를 꿈꾸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실로 이런 말이 절로 나오고 있는 시기입니다. 이처럼 놀라움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불안합니다. 평화를 원하면서도 과연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지 의심하고 그리고 또 불안에 휩싸이는 것이 솔직한 우리 심정 아닐까요? 이럴 때 오늘 들은 마리아의 대답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와 희망과 용기를 심어줍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마리아의 수태고지 축일을 기념하며 하느님의 천사가 전해주는 놀라운 메시지와 그에 대한 우리의 신뢰와 참여를 생각합니다. 하느님이 산골 처녀 마리아의 “Ad sum”을 통해 당신의 놀라운 일을 실현시킨 것처럼 우리도 그리고 우리민족에게도 그 놀라우신 일을 이루시길 희망하고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말씀을 상기하며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야훼, 나의 하느님,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일을 많이도 하셨사오니

당신과 비길 자 아무도 없사옵니다.

나의 하느님, 당신의 법을 내 마음 속에 간직하고 기뻐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당신의 정의를 알렸사옵니다.”(시편 40:5,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