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성서를 재미있게 공부합시다

성서를 재미있게 공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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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재미있게 공부합시다

박태식 신부(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성서는 무척 어려운 책입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로부터 세상의 아득한 미래를 내다본 요한묵시록까지 다룬 엄청난 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성서를 알아야 한다니 무슨 뾰족한 수가 없겠습니까?” 글자 그대로는 아니지만 필자가 흔히 받는 질문이다. 과연 성서를 깔끔하게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하고도 요약적인 방법은 없을까?

성서 본문을 한가지 선택해 분석해 보자.

행복선언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마태 5,3-6)

① 본문의 위치: 성서를 읽을 때 우선 필요한 작업은 이 본문이 어느 위치에 놓여 있는지 알아보는 일이다. 앞의 본문은 신․구약성서에서도 신약성서, 신약성서에서도 예수의 일생을 다룬 네 복음서, 네 복음서에서도 처음 나오는 마태오복음, 마태오복음에서도 이른바 ‘산상설교’(5-7장)라고 불리는 설교집성문, 그 중에서도 가장 처음 나오는 말씀이다. 흔히 ‘행복선언’이라 불린다.

② 본문의 출처: 복음서작가들은 예수를 직접 따라다니며 말씀을 기록한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교회를 통해 전해온 예수 傳承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이들이다. 그렇다면 마태오 말고 이 말씀을 수집해 책으로 엮은 이가 또 있었을까? 물론 있다. ‘행복선언’이라는 제목 옆의 손톱괄호 속 병행문(루가 6,20-23)이 바로 그것이다. 루가복음으로 가보자.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독자들은 즉시 차이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왜 루가에는 ‘마음이’가 없고, ‘하늘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라고 했을까? 예수님께서 마태오 用과 루가 用으로 행복선언을 두 번 말씀하셨을 리 만무이니, 이는 분명히 한가지 말씀의 變形들이다.  

마태오는 경건한 유대인 출신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는 유대교 전통을 존중했다. 따라서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해 ‘하늘나라’라고 한 것이다. 그러니 루가의 ‘하느님 나라’가 원래 예수님 말씀에 보다 가까운 셈이다. ‘마음이’ 역시 마태오가 첨가한 수식어일 가능성이 높다. 공동번역 성서에는 ‘마음이’라고 번역돼 있지만 헬라어 원문을 직역하면 ‘영으로’이다. “영으로 가난한 사람”란 당시의 熟語로 ‘겸손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 두 가지 예만 보아도 루가가 원래의 예수님 말씀을 충실하게 보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③ 마태오의 편집: 그렇다면 마태오는 왜 예수님의 말씀에 손을 댔을까? 그가 속한 교회의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우는 사람에게 선포한 예수님의 ‘행복선언’을 글자그대로 자신의 교회에 적용시킬 수 없었으리라는 뜻이다. 도대체 가난하고 굶고 절망에 우는 사람이 大衆을 이루어야 이런 행복선언이 먹혀들지 않겠는가? 사실 마태오의 교회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안티오키아는 인구 50만 이상의 대도시로 부와 권력을 거머쥔 도시였다. 즉, ‘가난’과 ‘굶주림’은 마태오 공동체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에, ‘영으로 가난한 이들’, ‘의의 굶주린 이들’이라고 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공동체에 맞게 내면화시켰던 것이다.

④ 원래의 의미: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행복선언’을 말씀하신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역사의 예수 주변에 모여들었던 이들은 대부분  병자, 세리, 죄인, 여성 등 사회적,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던 사람들이었다. 예수는 그들 모두에게 행복을 선언하신다. “지금 주머니에 동전 한푼 없는 당신들, 지금 주린 배를 움켜쥐고 겨우겨우 사는 당신들, 지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당신들, 당신들도 어엿한 하느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들 역시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사랑하니 말입니다.” 그들 모두는 예수님에게서 무한한 위로를 받았으며, 그분에게 나가야 비로소 사람대접을 받는 까닭에 꾸역꾸역 모여들었을 것이다. 행복선언이 생명의 말씀인 까닭은 거기에 있다.

비판적인 독서

마태오복음의 행복선언을 분석해 보았다. 간단해 보이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까지 간단했던 것은 아니다. 우선 본문의 맥락(①)을 밝히기 위해서는 신․구약성서의 전체 구조와 그 본문이 어디에 속하는지, 그리고 어떤 맥락에서 쓰였는지에 대한 입체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공동번역』(대한성서공회),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 『새번역성서』(CCK),   등 성서번역본들을 다양하게 비교해가며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독서방법은 자연스럽게 번역들과 소제목들의 차이점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 것이다. 비판적인 눈으로 읽는 치밀한 독서…, 성서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본문의 출처(②)는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바로 전승(口頭, 記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서본문들의 상호 관계를 알아야 하며 소제목 옆에 나오는 병행문을 찾아보면 된다. 비교를 통해 차이점과 공통점을 꼼꼼하게 점검하자.

전승에 대한 성서작가들의 편집 작업(③) 알기 위해서는 각 공동체의 사정을 알아야 한다. 성서가 2-5천년 뒤에 등장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여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의 문화, 지리, 경제, 철학, 언어 등에 관한 광범위한 지식의 습득이 필수적이다. 앞의 과정을 거쳐 전승을 역추적 하면 그 출발점인 역사의 예수를 만날 수 있다. 그 때야 비로소 말씀의 올바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④).

이쯤에서 아마 “이렇게 어려워서야…” 하면서 한숨을 내쉬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참고․보조 서적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성서사전 類, 주해서 類, 연구방법론 類, 배경사 類 등이 있고, 시간과 열의가 있는 분은 각종 교육기관의 문을 두드려보시기 바란다(서강대 신학대학원, 교리신학원, 성서 40주간, 성서모임, 성서 100주간, 통신성서…). 모든 정보는 catholic.or.kr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성서는 아는 만큼, 공부한 만큼, 부지런히 뛰어다닌 만큼 보인다. 이제부터 성서를 읽는 재미를 한껏 느껴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