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바울의 관대함, 성모마리아의 공감력(다해 연중2주일)

바울의 관대함, 성모마리아의 공감력(다해 연중2주일)

252
0
공유

다해 연중2주일(이사62:1-5/1고린12:1-11/요한2:1-11)

 

바울의 관대함, 성모 마리아의 공감력

 

1월25일은 ‘사도 성 바울로의 회심’축일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혹독하게 박해하던 사울이 다마스쿠스에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잡으러 가던 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바울’로 이름을 바꾸고 인생방향이 180도로 바뀐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이것을 ‘개종’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우리 전례력은 ‘회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교 신자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로 개종을 했건, 박해하는 가해자에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회심을 했건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을 전후로 사람이 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천주교, 정교회, 성공회를 비롯한 많은 교단에선 다 함께 매년 사도 성 바울로의 회심 축일이 있는 주간을 ‘교회일치 주간’으로 삼고 서로 미워하며 헐뜯지 말고, 서로 존중하고 한 형제자매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역사를 되돌아 보면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요한17:11)”라고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색하게 여러 파벌로 갈라졌고, 심지어 종교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실로 모든 그리스도교들은 회심하기 전 ‘사울’의 후예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땅에 있는 교회들 중 아직도 타 교단을 배척하고 증오하는 교인과 교회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그리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우리는 어떠한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들은 독서에서 사도 바울은 그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양한 은총의 선물을 아는 것과 그 다양한 은총은 모두 한 분 주님이신 성령께서 주시는 거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일의 결과는 여러가지이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일을 이루어 주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이익을 위한 것입니다.”(1고린12: 6-7)

사실, 회심하기 전 ‘사울’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회심한 ‘바울’은 이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회심하기 전에 그는 구원이란 오직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준수하는 경건한 유대인만 해당된다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한 후, 그는 구원이란 유다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에게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완고한 진리를 버리고 열린 진리의 세계를 맛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공회를 비롯하여 많은 교회 지도자들과 신도들이 교회일치 주간을 기념하고 기도하는 것은 바로 그동안 자신만의 완고한 진리에 갇힌 ‘사울’의 신앙태도를 반성하고 회개해서 다양성 속에서 활동하시는 성령 하느님의 풍요로운 은총에 마음을 여는 ‘바울’의 신앙태도를 닮으려는 것입니다.

이 은총에는 높고 낮은 것이 없습니다. 모두 성령으로부터 나온 다양한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교단마다 높고 낮고, 정통과 곁가지가 없습니다. 모두 시간과 공간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선교도구이자, 은총의 그릇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천주교, 정교회, 구세군은 모두 성령 안에서 한 형제자매이며 서로의 장점을 칭찬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보듬어 주면서 함께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갈 신앙의 형제자매인 것입니다. 이것이 회심한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 나라는 ‘잔치’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나지방의 혼인잔치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 사이의 대화입니다. 어머니는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져서 잔치의 즐거움이 깨질까 봐 마음이 다급했나 봅니다. 그런데 아들은 아무래도 어머니처럼 주방 일을 하지 않는 그저 초대받은 손님으로 앉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자, “저나 어머니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요한2:4)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의 이런 방관자적 말에 개의치 않고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2:5)라고 당신의 뜻을 관철시킵니다. 그러자 아들 예수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기적을 행합니다. 그 결과, 더 좋은 포도주가 만들어졌고, 잔치는 더욱 즐겁게 되었으며, 이 사실을 안 사람들은 놀라고, 제자들은 예수를 더욱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은 초월자이신 하느님이 하시는 것이지만, 때로 인간의 간절함과 신뢰가 하느님을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방관자적 자세가 아닌 어머니 마리아처럼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부터 나옵니다. 그럴 때 잔치는 더욱 풍요로와 질 것입니다.

교회일치주간을 맞이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다양한 은총의 선물은 차별없이 모두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교단을 진정한 형제자매로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교회 안에서도 다양한 교인들에게 관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저 관대한 마음만 갖는다고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더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타인에 대하여 ‘공감’하는 태도와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뢰입니다. 만일 그저 관대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져가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져도 그저 지켜만 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와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와 같은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행동할 때,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 사회는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포도주의 기적처럼 하느님의 손길이 그 한가운데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편협하고 하나 밖에 모르는 박해자 ‘사울’이 성령의 은총으로 다양한 은사를 받아들이는 주님의 제자 ‘바울’로 회심했듯이, 우리 성공회와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더욱 관대해지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 각자도 사도 바울처럼 변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 사회가 성모 마리아처럼 상대방의 처지를 공감하고 행동할 수 있는 따스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럴 때 주님의 기적은 우리 가운데 일어날 것입니다.

다양한 은사를 주시는 성령과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