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박태식의 함께 사는 이야기 멈추지 않을 것이다

멈추지 않을 것이다

800
0
공유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박태식(성공회신부, 신약학)

 

루가 13:31: 바로 그 때 바리사이파 몇 사람이 예수에게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를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헤로데 왕가

예수가 갈릴래아 전도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무렵, 예수의 신변을 걱정하던 바리사이 몇 사람이 다가와 예수에게 경고를 했다. 헤로데 안티파스가 당신을 죽이려 기회를 엿보고 있으니 빨리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라고……. 예수 주변의 바리사이들 중엔 적대적인 자들이 많았지만 간혹 호의적인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왜 헤로데 안티파스가 예수를 죽이려 했을까? 예수에게 무슨 위협을 느꼈기에 제거하려 했을까? 우선 그의 가문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헤로데 안티파스의 선대왕인 헤로데 대왕(기원전 37-4년 통치)은 원래 이스라엘 본토 출신이 아니었다. 헤로데는 유대 땅 아래쪽 이두메아 출신이었기에 유대인들에게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정치적인 배려로 이스라엘 전역을 통치하면서 이를 가능케 해준 로마에 치성을 드리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윗사람에겐 고개를 연신 숙이면서 아래는 사정없이 밟아대는 자전거식 통치술의 대가였던 것이다. 그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잘 보이려 사마리아 지역 이름을 황제의 별명인 세바스테로 바꾸었고 수려한 해변도시 가이사리아(‘황제라는 뜻)를 건설해 황제에게 헌납했다. 그 이후 로마 총독부는 자연스럽게 가이사리아에 자리를 잡았다. 헤로데 대왕은 의심이 많았던 인물이라 주변사람들을 믿지 못했고 가족과 친구와 친척들을 죽이거나 잡아가두고, 심지어 자신이 죽는 순간 예리코 궁전에서 6백 여 명의 유대인 남자도 죽이라고 명령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성서에 따르면 헤로데는 아기 예수를 찾아 없애기 위해 베들레헴과 그 일대의 두 살 이하 사내아이들을 모두 살해한 전력까지 있다(마태 2:16). 사실 여부를 떠나 그가 얼마나 포악무도한 왕이었는지 잘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헤로데 대왕이 로마제국에게서 물려받은 영토는 사마리아, 갈릴래아, 베레아, 이두메아였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유다와 데카폴리스까지 선사받아 남북으로는 사해 남쪽에서 요르단강 수원(水源)까지, 동서로는 요르단강 건너편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거대한 땅을 다스리기에 이른다. 철저하게 로마제국에 아부를 한 덕분이었다. 헤로데가 죽자 그의 아들들이 왕국을 분할해 물려받았는데 아르켈라오는 유다를, 안티파스는 갈릴래아와 베레아를, 필립보는 요르단 동북지방의 영주에 오른다. 그 중 아르켈라오는 로마제국에 미움을 받아 기원후 6년 폐위되었고 유다는 로마총독이 직접 다스리는 통치령이 되었다. 한 나라를 분할해, 꼭두각시 왕조를 통한 간접 통치와 총독을 임명해 직접 통치를 하는 방법, 분할하여 통치하라(divide et impera)’는 로마제국의 전형적인 통치술이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이스라엘이었다.

 

예수와 헤로데 안티파스

예수는 헤로데 안티파스(기원전 4-기원후 39)가 영주로 있었던 갈릴래아 출신이다. 그런데 복음서에 보도된 상황을 보아하니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에 대해 상당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기는 분봉왕으로서 이스라엘 땅 전역을 들었다 놓았다하는 폭발적인 카리스마의 소유자에게 무신경했다면 아마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그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나오지.”(마르 6:14)라 했고 예루살렘에서는 예수와 직접 만나기까지 했다(루가 23:8-13). 비록 예수가 로마의 직접통치 지역인 유다 땅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지만 원래 출신은 갈릴래아다. 따라서 당시 로마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26-36)가 때마침 예루살렘에 와 있던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예수를 보낸 것이었다. 사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오래전부터 예수를 보기 원했으며(루가 9:9) 죽이려고까지 했던 터라(루가 13:31) 예수에 대한 궁금증이 대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헤로데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의 정치적인 입장이 드러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당시 현실 정치에 대한 예수의 직접적인 견해는 발견할 수 없고 그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말씀 한 두 가지만 전해올 뿐이다. 이를테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는 말씀에서 로마의 지배에 대한 우회적인 언급을 읽을 수 있는 정도다. 특히, 이스라엘에 주둔한 로마군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는 장면에서는 과연 예수가 피식민지인으로서 자존심이 있었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신대 할머니들만 머리에 떠올려도 피가 거꾸로 솟는 우리네 심성으로 볼 때 영 낯선 경우이다. 그렇게 예수가 로마제국에 대해서는 비교적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던 데 반해 그 꼭두각시 왕인 헤로데에겐 쓴 소리를 종종 했다.

예수는 분봉왕 헤로데를 가리켜 교활한 여우라 불렀고(루가 13:32),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라 하여 사치한 생활에 빠진 왕족을 은근히 비아냥거렸으며(마태 11:9), 헤로데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세례자 요한을 칭찬했다(마태 11:11). 또한 헤로데를 지지하는 세력인 헤로데파는 예수를 곤경에 빠트리려 로마에 바치는 세금문제로 적대적인 질문을 던졌고(마르 12:13-17) 예수를 제거하려 바리사이와 모의를 했다(마르 3:6).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예수는 바리사이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신신당부를 제자들에게 한 바 있다(마르 8:15). 예수와 헤로데, 나아가 예수와 헤로데파 사이에 무엇인가 묘한 기류가 흘렀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예수는 헤로데에게서 과연 무엇을 발견했을까? 비단 헤로데 안티파스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로부터 이어 내려온 왕가 전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도움을 받기 위해 여기서 잠시 통치자와 국가에 대한 현대적인 정의를 살펴보자.

근대 이후 국가 개념이 많이 달라졌다. 요즘은 국가가 국민의 거의 모든 생활에 간여하는 게 일상사가 된 느낌이다. 국가는 국민의 의료, 보건, 일자리, 복지, 안전, 심지어 자녀의 숫자까지 통제하려 든다. 말하자면 국민의 생활 전반, 즉 국민의 생명을 국가가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정보원의 기능에 대해 수사권을 제한하라거나 상당 부분의 업무를 해당부처로 이관하라는 요구가 강해지면서 국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계시가 되었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나서서 국정원에게 자체 개혁안을 만들어내라는 요구까지 했을까?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법을 확대 해석해 국민의 사생활까지 사찰해서는 안 되다는 뜻이리라. 사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라면 개혁안을 요구하는 게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의 통치자들은 통치술에 있어 그 성격이 오늘과 무척 달랐다. 프랑스 철학자 M. 푸코는 안전, 영토, 인구(심재관외 2인 옮김, 난장, 2011)라는 책에서 과거 통치자들에 대해 설명을 시도했다.

최고의 통치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자기 자신을 통치해야 할까? 어떻게 타인을 통치해야 할까? 등등의 통치에 관한 질문들이 16세기에 일반화되었고 이 문제는 18세기까지 확산되었다. 그 중에서 1513년에 출간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이를 비판한 다른 텍스트들과 군주론이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가를 추적해보는 게 18세기 통치관련 논의의 핵심이었다.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제군주론의 핵심으로 들어가 본다. 첫째, 군주는 자기 자신을 공국의 일부가 아니라 외부에 놓인다. 그래서 군주는 원칙적으로 공국과 근본적, 본질적, 법률적 관련을 맺지 않는다. 군주에겐 그저 외재성과 초월성이 있을 뿐이다. 둘째, 외재성과 초월성 덕분에 군주의 입지는 취약하고 그로 인해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에 처한다. 셋째, 그 결과로 군주는 공국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결국 군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 즉 군주 자신을 보호해야만 한다. 따라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제시한 통치술이란 군주가 자신과 공국이 맺는 허약한 관계를 정치적인 폭력과 술수를 통해서라도 유지시키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처럼 과거의 통치자들은 국가와 국민을 자신을 위한 소유물쯤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물론 예수가 훗날 푸코의 이론을 알았을 리 없지만 그 저변에는 통하는 면이 있다.

예수는 헤로데 안티파스를 교활한 여우라고 불렀다. 틀림없이 헤로데가 개인의 이득과 정치적인 판단을 좇아 정의를 거스르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의 탈법 행각을 지적했다가 처참하게 살해되고 말았다. 그리고 예수가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했다면 이는 틀림없이 헤로데에 빌붙어 호화생활을 하는 헤로데파를 지목한 호칭이었을 테고, 지목당한 헤로데파는 예수의 독설을 견디느니 차라리 제거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니 예수에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질문을 제기할 수밖에……. 이런 상황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도 당부한다. 절대로 헤로데파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라고! 이리저리 묶어보았더니 그런대로 헤로데에 대한 예수의 입장이 정리가 되었다. 푸코의 덕이 컸다.

예수는 3년 동안의 공생활 내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이만저만 어려움을 겪었던 게 아니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정치종교 합동세력에 의해 처참한 십자가형에 넘겨지고 만다. 가진 자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였을 것이다. 놀라운 기적을 행하고 구원의 말씀을 전하는 저 정도의 탁월한 능력이면 얼마든지 좋은 세월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예수에게는 주어진 일이 있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하는일이었다. 바로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는예언자로서의 사명 때문이었다.

예수는 당시에 자행되었던 정치적인 폭력을 잘 알고 있었으며 정치 현실의 더러운 속내까지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니 예언자 예수가 예루살렘 말고 과연 어떤 장소에서 죽을 수 있었겠는가? 예수를 보면 종교는 정치에 상관하지 말라는 세상의 말이 영 헛소리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