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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의 두 가지 원칙(마르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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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연중7주일 금요일

(마르 10:1-12)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 내용은 결혼과 이혼에 대한 예수님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의 대화입니다. 예수님 시대는 오늘날과 달리 여성을 성인 남성의 소유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예수님께 건넨 그들의 말투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10:2) 오늘날 우리 사고방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당시 사람들은 여성을 물건처럼 필요 없으면 ‘버리는’ 부품처럼 생각했습니다.

흔히, 법이나 관습, 관례, 관행 심지어 전통까지 우리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유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근거로 해서 현재의 문제를 판단하고 해결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종종 그러한 근거가 애초부터 정당하며 완벽한 것인지 비판적인 질문을 가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토라’라고 부르는 이스라엘 율법의 권위는 모세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바라사이파 사람들은 우리 양심과 부합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모세의 율법이라는 권위를 앞세워 양심을 뭉개 버리곤 합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 근원적인 “천지창조 때부터”라는 말씀으로 무디어진 우리의 양심을 일깨우십니다.

그럼 ‘양심’이란 무엇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이라고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을 닮은 ‘선량한 마음(良心)’이 태생적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의 표현대로 우리의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져서”(10:5) 법이나 관행들이 생겨난 측면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법이나 전통, 관례, 관습들이 사회의 질서를 잡아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우리의 양심을 억누르는 억압적 측면도 있습니다.

이러한 어두운 특징이 왜 생기는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대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제자들과 나누신 말씀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힘을 가진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심판하는 것이라면, 예수님께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똑 같은 눈높이로 대하라는 윤리적 잣대를 제시하시고 계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입장은 당시에는 실로 파격적인 가르침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볼 때도 아주 민주적이고 평등하다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 갈등에 봉착하고 심지어 이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이와 같은 두 가지 원칙을 마음에 담았으면 합니다.

첫번째 원칙은 “법대로 해”라는 말을 확 내뱉기에 앞서서, 먼저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에 심어주는 ‘어진 마음(良心)’이 혹시 굳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께 어진 마음을 회복시켜 달라고, 그리고 그 마음으로 주님 당신이 맺어 주신 내 영혼의 친구, 내 영혼의 동반자를 다시 사랑하게 해 달라고 간구해 봅시다.

두번째 원칙은 우리 부부가 진정으로 같은 눈높이와 같은 위치로 살아왔는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남자이건 여자이건 누가 누구를 지배하지 말고 한 몸처럼 살아가라 하십니다. 특별히 가부장적 문화가 강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더 마음에 삼아 자신의 배우자를 소유물이 아닌 자신의 몸처럼 여기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이 두가지 원칙을 잘 실천하셔서 우리 교인 가정 모두가 주님 보시기에 행복한 가정, 성스런 가정을 이루 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